일상의 사물들을 담담한 먹빛으로 그려내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집’을 모티프로 한 <한옥 12>(2024)를 비롯해 수묵화 14점과 설치작품인 <수묵서가도>(2024)를 대중에게 소개한다.
작가에게 집이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장 많이 머무는 장소이자 삶의 희노애락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집은 “삶의 근본이 되는 요소”라고 강조하는 작가는 간결한 수묵의‘획(劃)’으로 한국의 전통가옥인 한옥을 화폭에 소환한다. 대담한 먹선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한옥의 기둥과 대들보, 처마와 서까래가 창조되고 섬세한 선들이 포개진 자리에는 정원을 쓸던 싸리 빗자루가 생성된다.
검은 먹선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화면을 분할하고 있는 한옥 시리즈들에서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물의 형태보다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물을 둘러싼 여백 또는 바탕이다. 그의 작품에서 바탕은 단순히 소재를 그려 넣기 위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여러 겹의 한지를 쌓아 올리고, 표면을 정성스럽게 두드려서 만드는 바탕은 오랜 시간에 걸친 작업과 인내가 요구된다. 마치 수행과도 같은 작업 과정을 통해 제작된 바탕 위에 작가는 일상의 삶을 통해 마음에 담긴 사물들을 먹으로 그려내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정서를 전한다.
미술사가 김이순은 “창작의 과정이나 태도의 치열함과는 별개로 강미선 작가의 작품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는 것은 먹의 담담함과 표현의 간일함 때문”이라 밝히며 “그의 작품을 음악에 비유하자면 푸근하면서도 묵직한 첼로의 음률을 닮아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먹의 담담함과 표현의 간일함을 자유로이 풀어내는 작가의 재능은 오랜 시간 동안 한지의 물성과 먹의 본질에 대해 탐구해왔던 그의 노력에서 기인한다.
1980년대 20대의 청년이었던 작가는 동양화의 정신 회복을 추구한 수묵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수묵과 종이라는 재료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함께 재료와 표현의 한계도 경험했다. 수묵이란 질료를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추구하였던 수묵화 운동은 90년대 접어들면서 서서히 열기가 식어갔으나 작가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며 수묵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왔다.
최근 새로운 소재들과 표현들이 넘쳐흐르는 시대적 변화 앞에서 수묵화의 입지가 좁아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한지를 제작하고 붓질을 반복하여 화면에 먹을 올리는 작업을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에게 있어 한지와 수묵은“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한국적 재료”이며,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강미선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조형 언어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한지와 수묵의 조형 언어로 평범하지 않은 새로움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통해 강미선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는 주제는‘관심(觀心)’으로, 뜻을 풀어보면 마음으로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안재혜 관장은 “마음을 들여다보려면 쓸데없는 것, 거추장스러운 것, 얽혀 있는 것을 모두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작가의 말처럼, 안상철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담대한 선들과 여백이 만들어 내는 집들 사이에서 저마다의 방식대로 각자의 마음 정원을 찾기는 바란다”고 밝혔다.
가을의 초입에서 시작하는 이번 전시는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관람이 가능하며 모든 관람객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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